안필드의 진짜 주인은 에버튼? 리버풀과 존하울딩, 그 숨겨진 진실 3가지

HugoVance

안필드의 진짜 주인은 에버튼이었다? 리버풀 창단 뒤에 숨겨진 진실 3가지

안필드의 진짜 주인은 에버튼? 리버풀과 존하울딩, 그 숨겨진 진실 3가지


안필드가 원래 ‘파란색’이었다는 사실, 알고 계셨나요?








축구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
‘안필드(Anfield)’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뛸 겁니다.
“You’ll Never Walk Alone”
울려 퍼지는 붉은 제국, 리버풀 FC의 성지니까요.




그런데 만약 제가
“안필드의 원래 주인은 에버튼이었고,
그곳에서 우승컵까지 들어 올렸다”
말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?


거짓말 같죠?
하지만 100% 팩트입니다.


많은 축구 팬들이 리버풀과 에버튼을
그저 ‘앙숙’으로만 알고 있지만,
사실 두 클럽은 한 뿌리에서 나온 형제이자,
돈과 자존심 때문에 갈라선 원수입니다.




오늘은 교과서적인 역사 이야기는 집어치우고,
술 냄새와 돈 냄새가 진동했던
리버풀 창단의 적나라한 비하인드 스토리를
파헤쳐 보겠습니다.




이 글을 다 읽고 나면,
머지사이드 더비가 왜 그렇게 거친지
단박에 이해하게 될 겁니다.







1. 월세 대란: “집세 2.5배 올려주세요” (사건의 발단)



존호울딩(하울딩) 출처:나무위키
존호울딩(하울딩) 출처:나무위키




사건의 중심에는
존 하울딩(John Houlding)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.
그는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었습니다.
양조장 주인이자, 시의원,
나중에는 리버풀 시장까지 지낸 거물이었죠.



1884년,
에버튼 FC는 원래 쓰던 구장이 폐쇄되자
존 하울딩의 주선으로 안필드에 둥지를 틉니다.
이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습니다.
에버튼은 승승장구했고,
1890-91 시즌에는 안필드에서
리그 우승까지 차지했으니까요.


문제는 ‘돈’이었습니다.


에버튼이 잘나가자
존 하울딩의 욕심도 커졌습니다.
그는 에버튼 운영진에게
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합니다.


  • 임대료 폭등: 연간 100파운드였던 임대료를
    250파운드로 올려달라고 통보합니다.
    (지금 가치로 따지면
    수억 원 이상의 체감 인상률입니다.)


  • 맥주 독점권: 경기장에서 오직
    자신의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만 팔 것을 강요했습니다.


솔직히 제가
에버튼 운영진이었어도
뚜껑 열렸을겁니다.
“우리가 축구 클럽이지,
당신 맥주 팔아주는 호구냐?”라는
반발이 터져 나온 건 당연한 수순이었죠.


당시 갈등 요약




  • 1884년: 에버튼, 안필드 입성
  • 1891년: 에버튼, 안필드에서 리그 우승
  • 1892년: 존 하울딩의 임대료 인상 요구
    vs 에버튼 운영진의 거부 → 협상 결렬






2. 에버튼의 야반도주, 그리고 텅 빈 안필드




협상은 파국으로 치달았습니다.
에버튼의 다수파(반 하울딩 파)는
아주 과감한 결단을 내립니다.


“더러워서 나간다.
우리가 새 집 짓고 말지.”


1892년,
에버튼은 안필드를 버리고
불과 1km 떨어진 곳에
새로운 구장을 짓고 떠나버립니다.




그곳이 바로 지금의
구디슨 파크(Goodison Park)입니다.
에버튼 선수들, 스태프, 팬들까지
싹 다 짐을 싸서 나가버린 겁니다.



존 하울딩의 멘붕




졸지에 존 하울딩은
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습니다.


  • 남은 것: 덩그러니 놓인 텅 빈 축구장 (안필드)


  • 사라진 것: 축구 팀, 선수, 감독, 관중


보통 사람이면
여기서 포기하고 땅을 팔았을 겁니다.
하지만 존 하울딩은 ‘불도저’ 같은 사람이었습니다.
그는 텅 빈 잔디밭을 보며
이렇게 다짐합니다.


“팀이 없으면,
내가 만들면 되잖아?”



이 오기와 독기가
바로 리버풀 창단의 시작이었습니다.




만약 이때 에버튼이
임대료를 조금만 더 깎았거나,
존 하울딩이 자존심을 굽혔다면?
지금의 리버풀 FC는
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.
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,
참 아이러니하죠.







3. ‘맥스(Macs)의 팀’과 리버풀 FC의 탄생




존 하울딩은 1892년 3월,
급하게 새 클럽을 만듭니다.




처음 지으려던 이름은 놀랍게도
‘에버튼 FC & 애슬레틱 그라운즈’였습니다.


하지만
잉글랜드 축구 협회(FA)가
태클을 겁니다.





“이미 에버튼이라는 팀이 있는데
무슨 소리냐? 승인 불가.”



결국 존 하울딩은
1892년 6월 3일,
도시의 이름을 따서
리버풀 풋볼 클럽(Liverpool Football Club)으로
이름을 확정합니다.


선수가 없는데 어떡하죠?



리버풀 창단 멤버 출처:나무위키
리버풀 창단 멤버 출처:나무위키




팀 이름은 정했는데,
뛸 선수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.
에버튼이 다 데려갔으니까요.
존 하울딩은 파트너였던
존 매케나(John McKenna)에게
미션을 줍니다.




“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선수를 구해와라.”


매케나는
잉글랜드가 아닌 스코틀랜드로 떠납니다.
그리고 스코틀랜드 출신 용병들을
대거 영입해옵니다.
당시 영입된 선수들의 성(Last Name)이
대부분 ‘Mc(맥)’으로 시작해서,
초기 리버풀은
“Team of Macs(맥들의 팀)”이라고
불리기도 했습니다.


  • 초기 스쿼드: 13명 중 10명 이상이 스코틀랜드인


  • 전술: 잉글랜드의 킥 앤 러시보다 세밀한 스코틀랜드식 패싱 게임 도입


이 급조된 외인 구단은
창단 첫해 랭커셔 리그에서 우승하며
보란 듯이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합니다.
에버튼이 버리고 간 경기장에서,
에버튼을 보란 듯이 추격하기 시작한 거죠.






라이벌이 없었다면 전설도 없었다




결국 리버풀 창단
숭고한 스포츠 정신보다는,
자본가의 야망과 세입자의 반란이 충돌하며
만들어낸 우연의 산물이었습니다.


하지만 바로 그 ‘복수심’과
‘경쟁심’이 있었기에
리버풀이라는 거대한 클럽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.
안필드는 에버튼이 남긴 유산이지만,
그곳을 요새로 만든 건
리버풀의 피와 땀이었습니다.


지금도 머지사이드 더비가 열리는 날이면
안필드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릅니다.


130년 전,
월세 때문에 갈라선 두 형제의 싸움은
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.


여러분이 만약
1892년의 존 하울딩이었다면,
텅 빈 경기장을 보고
어떤 선택을 하셨을까요?







참고 자료 (References)

뮌헨 비행기 참사 사망자, 원인, 맨유의 뼈아픈 과거(영국 축구 리그 역사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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